몇편의 단편들로 이루어진 단편소설집이라길래 가볍게 읽어도 되겠다 싶어서 출퇴근길이나 자투리시간에 몇장읽다가 밖에서 꺽꺽 우는 추한 모습을 드러내고 만 이후 퇴근이후 내 방에서 정독으로 말그대로 앉은자리에서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읽었다. 그만큼 주옥같은 문장이 많아서 두고두고 보고 싶어 아래에 붙박해놓으려 한다. 소장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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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나는 루이의 유치한 말과 행동이 속 깊은 애들이 쓰는 속임수였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그런 아이들은 다른 애들보다도 훨씬 더 전에 어른이 되어 가장 무지하고 순진해 보이는 아이의 모습을 연기한다.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통해 마음의 고통을 내려놓을 수 있도록, 각자의 무게를 잠시 잊고 웃을 수 있도록 가볍고 어리석은 사람을 자처하는 것이다. 진지하고 냉소적인 아이들을 어른스럽다고 생각했던 그때의 나는 루이의 깊은 속을 알아볼 도리가 없었다.
상대의 고통을 같이 나눠 가질 수 없다면, 상대의 삶을 일정 부분 같이 살아낼 용기도 없다면 어설픈 애정보다는 무정함을 택하는 것이 나았다.
"기억은 재능이야. 넌 그런 재능을 타고났어."
"하지만 그건 고통스러운 일이란다. 그러니 너 자신을 조금이라도 무디게 해라. 행복한 기억이라면 더더욱 조심하렴. 행복한 기억은 보물처럼 보이지만 타오르는 숯과 같아. 두 손에 쥐고 있으면 너만 다치니 털어버려라."
불교신자였던 할머니는 사람이 현생에 대한 기억 때문에 윤회한다고 했다. 마음이 기억에 붙어버리면 떼어낼 방법이 없어 몇 번이고 다시 태어나는 법이라고 했다. 그러니 사랑하는 사람이 죽거나 떠나도 너무 마음 아파하지 말라고, 애도는 충분히 하되 그 슬픔에 잡아먹혀버리지 말라고 했다. 안 그러면 자꾸만 다시 세상에 태어나게 될 거라고 했다.
시간이 지나고 사람들은 떠나고 우리는 다시 혼자가 된다.
그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기억은 현재를 부식시키고 마음을 지치게 해 우리를 늙고 병들게 한다.
그녀 나이 서른하나, 그녀 또래의 이들은 함께 힘을 모아 무엇 하나 바꿔보지 못했다. 세상은 그녀가 온몸을 던져도 실금 하나 가지 않을 것처럼 견고해 보였다.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안다고 해서 바꿀 수 있는 건 아니라는 걸 그녀는 그녀의 시십대를 통해 깨쳤다.
다수의 선한 사람들의 세상에 대한 무관심이 세상을 망친다고 아빠는 말했었다. 아빠의 말은 맞았지만 그녀는 이런 세상과 맞서 싸우고 싶지 않았다. 승패가 뻔한 링 위에 올라가고 싶지 않았다. 그녀에게 세상이란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수그리고 들어가야 하는 곳이었고, 자신을 소외시키고 변형시켜서라도 맞춰 살아가야 하는 곳이었다. 부딪쳐 싸우기보다는 편입되고 싶었다. 세상으로부터 초대받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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